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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공유할 일상생활25

<Episode.12> 게으름뱅이, Social Designer로서 가장 소중한 2년을 경험하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꽤 유명한 곳이었고, 법인을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있는 조직이었다. 그래서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그 곳에서 보고 배우며 경험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선배들이 3명이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매우 큰 힘이 되었고, 업무 외의 시간에도 함께 운동을 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다행히 업무적으로도 좋은 성과들을 낼 수 있어서 인근 지역에서는 좋은 이미지로 평가받으며 사회복지사로서의 입지를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종합복지관이라는 특성 덕분에 사회복지 분야에 존재하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반면 좋지 않은 부분들도 경험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사회복지 조직은 훨씬 보수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알.. 2024. 5. 21.
<Episode.11> 게으름뱅이, 다시 도전하다. 후회 가득한 첫 경험을 뒤로 하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냉정한 눈으로 바라봤을 때 나에겐 두 가지의 큰 약점이 있었다. 하나는 진로를 변경한 시간만큼 남들에 비해 시작이 늦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대학교 졸업이 아닌 디지털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원래 다녔던 대학교의 졸업장은 사회복지 전공이 아니었기에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불리했고, 또한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내 나이가 많은 것도 불리한 부분이었다. 특히 몇 차례의 면접을 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대부분의 팀장급들이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여자들이 많은 조직의 특성 때문인 듯한데, 내가 팀장이라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팀원을 뽑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졸업 직후 취업할 때는 어리다는 .. 2024. 5. 21.
<Episode.10> 게으름뱅이, 소통에 오류를 범하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다시 본가에서 살게 되었고, 근처의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감사했다. 결혼 자금으로 모아놓은 돈이 있긴 했지만, 공부를 시작할 때 이 돈 만큼은 절대 손대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심했었다. 쉽지 않은 결정을 지지해준 여자 친구(현재의 아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의지를 반영한 결정이었다. 다행히 공부를 하는 동안 학비와 생활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고, 경제적인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되면서 공부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나고 무사히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게 되었고, 자격증이 나오.. 2024. 5. 21.
<Episode.9> 게으름뱅이, Social Designer가 되기로 결심하다. 진로를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던 중,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마치 중학교 시절 농구선수를 꿈꿨던 바로 그 때의 설렘과 뜨거움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social designer가 되는 것이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Social Designer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사회복지사이다. 내가 사회복지사를 Social Designer라고 부르는 게 된 것은 사회복지에 몸담고 있는 어떤 분의 강의를 듣게 된 이후부터였다. “어쩌면 사회복지사란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작은 세상을 디자인 하는 사람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이후부터 나는 스스로를 Social Designer라고 정의했다. 허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사회복지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게 하기에.. 2024. 5. 21.
<Episode.8> 게으름뱅이, 미지근한 삶을 살다. 어느 덧 취업을 깊이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사실 4학년이 되어서야 취업의 방향을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생각 없이 살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전공 학과는 취업과는 거리가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동기들은 저마다의 진로를 결정하고 스펙들을 쌓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고, 4학년이 되어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져 취업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은행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또 다른 이는 공무원 준비를 하는 등 각자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다만 학교에서든, 교회에서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존경하는 교회의 누군가로부터 군무원이 장래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분 역시 군무원이었고, 열심.. 2024. 5. 21.
<Episode.7> 게으름뱅이, 노력하다. 나와 싸웠던 녀석의 학과보다 높은 순위를 받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학과의 학생들이 강제로 행사에 참여하는 것만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참여할 마음과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모여야 재미도 있고 성적도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고로 학교 행사란 건 학생들이 즐겨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고, 아마도 그 녀석과 싸우지 않았다면 순위에 연연하지 않는 아주 즐거운 체육대회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테마는 모든 학생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체육대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즐거운 체육대회를 만들기 위한 기획단을 구성했다. 동기들이 든든한 지원군으로 흔쾌히 나서 주었고, 평소 알고 지내던 몇몇 선후배들도 도와주었다. 덕분에 좋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고, .. 2024.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