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게 된 곳은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꽤 유명한 곳이었고, 법인을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있는 조직이었다. 그래서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그 곳에서 보고 배우며 경험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선배들이 3명이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매우 큰 힘이 되었고, 업무 외의 시간에도 함께 운동을 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다행히 업무적으로도 좋은 성과들을 낼 수 있어서 인근 지역에서는 좋은 이미지로 평가받으며 사회복지사로서의 입지를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종합복지관이라는 특성 덕분에 사회복지 분야에 존재하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반면 좋지 않은 부분들도 경험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사회복지 조직은 훨씬 보수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지 않은 관습들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고, 대부분의 선배들이 자신이 당한 부조리를 후배들에게도 흘려보내고 있었다. 또한 실제적인 서비스 제공보다는 실적 위주로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실적은 기관 평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무래도 실적 중심으로 조직이 운영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사회복지를 시작할 때 가졌던 나의 마음은 말 그대로 이상향일 뿐이었고, 현실에서는 실현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느 조직이든 밝은 면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은연중에 사회복지 조직은 그래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많이 실망했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 나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사회복지 분야에 있으면서 경험했던 좋았던 부분과 실망했던 부분들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해 주었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진심을 담는다면 뭔가 잡힐 듯도 했다. 고민이 있었음에도 나의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선배와 동료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여전히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일도 재미있었다. 단지 가끔씩 겪게 되는 부조리한 현실이 나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조직 안에서는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권위를 챙기던 선배들이 사회복지 환경 개선을 위한 대외활동에는 소극적이라는 사실도 무척 실망스러웠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똑같은 상황이 되면 나 역시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서의 시간들은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영양분이었다.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그 순간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욱 고마웠다. 마음이 지칠 때마다 진심으로 위로해준 선배와 동료들, 그리고 좋았던 순간에는 함께 그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사회복지라는 조직과 환경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가장 큰 수확 중 하나였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해야 할 시기가 되었을 때,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퇴사를 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어쩌면 부당하게 느껴졌던 그 사건이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시그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들었던 동료들과 복지 현장을 뒤로 한 채 또 다른 곳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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