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를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던 중,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마치 중학교 시절 농구선수를 꿈꿨던 바로 그 때의 설렘과 뜨거움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social designer가 되는 것이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Social Designer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사회복지사이다. 내가 사회복지사를 Social Designer라고 부르는 게 된 것은 사회복지에 몸담고 있는 어떤 분의 강의를 듣게 된 이후부터였다.
“어쩌면 사회복지사란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작은 세상을 디자인 하는 사람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이후부터 나는 스스로를 Social Designer라고 정의했다. 허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사회복지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분야를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오랜 시간 고민을 했지만, 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든 요인들 덕분에 과감하게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주변에서 사회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고, 무엇보다 사회복지 분야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을 유의미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직접 사회복지를 하는 대신 돈을 많이 벌어 기부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것이 정답이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기부금이든 사람들의 노력이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이고 투명하게 전달되기를 원했던 것 같고, 나라면 그것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에게 사회복지란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부분과는 별개로 누구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회복지였다.
한편으로는 선진국의 국민들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사회복지의 혜택을 내 주변의 사람들도 누리길 바랐다. 그러한 변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고, 언젠가는 나의 가치와 신념이 사회복지 분야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순간이 오길 소망하게 되었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될 무렵, 당시 나의 여자 친구가 보여준 긍정적인 태도는 결심을 굳히는 결정타가 되었다. 미래를 약속한 사이였기에 그녀의 생각이 중요했고, 내가 가장 걱정했던 금전적인 부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동안 회사를 다니며 결혼 자금으로 쓸 만큼의 돈은 모아놓았기 때문에, 결혼 후의 일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당신을 믿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당신의 뒤에서 늘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야.”
현재 나는 그 때의 여자 친구와 결혼했고, 빚 없이 마련한 아파트에서 자녀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감사하며 행복하게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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