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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공유할 일상생활/1. 게으른 청년 이야기

<Episode.17> 게으름뱅이, 사무실에 틀어 박혀서 지내다.

by 공감디자이너 하투빠 2024. 5. 22.

정신병원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는데, ‘정신건강 사회복지사라는 자격을 갖게 된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이는 정신건강과 관련된 기관에서 1년 동안 수련을 하고 시험을 치는 등의 모든 과정을 통과하면 얻게 되는 자격증이다. 사실 병원에서 일한 경력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장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좋게 봐 준 덕분에, 병원 일을 하는 동시에 수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함께 일한 사람들 덕분에 좋은 기회를 잡았지만, 한편으론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마치 군 생활이 생각날 정도로 힘들었던 1년이었지만, 이를 참고 견딘 덕분에 무사히 수련 과정을 마치고 정신건강 사회복지사라는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다.

 

병원 일을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건강 관련 업무를 보는 지역 센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정확한 명칭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마음 놓고 그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새롭게 들어간 곳은 병원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매우 사무적이고 건조했고 딱딱했다. 옆 사람과 말을 할 때 나도 모르게 속삭이게 될 정도였다. 위계질서가 뚜렷했고, 공공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개인 사업체 마냥 몇 명의 간부들이 마음대로 기관을 쥐락펴락했다. 그 집단에서는 간부들이 왕이었고, 겉으로는 소통이 잘 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다. 팀원들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겼고, 본인들의 공적을 내세우기에 급급했다. 그래도 다행히 공공의 적이 있었던 덕분에 팀원 간의 관계는 양호한 편이었다. 그나마 다른 기관들에 비해 급여는 조금 나은 편이었는데, 돈을 더 주는 데는 확실히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말한 불편한 환경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서도 배울 것들은 있었다. 우선 정신건강과 관련된 정책이나 흐름과 같은 큰 줄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관련된 기관에 대한 정보들도 빠르게 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정신건강 분야와 그 속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관의 성격 상 정신건강과 관련된 정책 및 사업을 제안하거나 다른 기관의 업무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현장에서 일하던 정신병원과는 180도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동일한 분야에서 일을 하더라도 기관의 성격에 따라 일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행정적인 업무들에 점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서류를 작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가기관에서는 배려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수시로 실적과 문서들을 요구했고, 상급자들은 그런 부당한 요구에 맞서기는커녕 팀원들을 혹사시켜 국가기관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정신건강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소유한 사람들을 전문요원이라 칭하고, 다른 이들은 비전문요원으로 구분하며 차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이 곳은 더욱 심했다.

 

이제는 내가 나아갈 방향을 어느 정도는 결정해야 했다. 나는 현장에서 정신질환자들과 부딪히며 일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사무실에서 꼰대들과 일하는 것이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