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정신건강 분야에서 일하길 희망하던 나는 다를 거라 생각했지만, 나 역시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래서 처음 병원에서 일을 시작할 때 괜히 겁을 먹고 움츠러들었던 것 같다. 입사 후 2주 정도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제법 고생을 했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긴장이 풀리고 정상적인 상태에서 바라본 현장은 오히려 그 동안 일했던 곳과는 다른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정확하게는 흥미를 느끼게 하는 포인트가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업무 만족도를 높여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가 좋은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어려움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성격이 좋은 사람, 일을 잘하는 사람, 배려심이 많은 사람 등 저마다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는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한 건 자신의 성향과 잘 맞는 사람을 만났을 때 업무 효율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직장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신병원에서 처음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의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가득할 수 있었던 건 나와 함께 일한 좋은 동료들 덕분이다. 그들은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했으며, 일까지 잘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한 2년의 시간은 내가 정신건강 사회복지사로서의 기초를 닦는데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그리고 나에게 영향을 준 또 다른 존재는 바로 병원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고 생활했던 정신질환자들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들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과의 관계는 점점 편안해졌다. 내가 느끼기에는 일반인보다 오히려 정이 많고 순수한 부분도 있었다. 물론 그들 중에도 계산적이거나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나름대로의 경계선을 만들고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편인데, 이들에게는 나도 모르게 느슨한 경계선을 만들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내가 그들을 편하게 생각한다는 증거이기도 한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를 만나서 경계선을 만드는 작업은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직감 같은 무의식적인 부분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끔 정신 질환의 정도가 심해져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그 순간이 오면 그들과 힘들게 만들었던 관계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고 그들이 다시 회복이 되었을 때는 오히려 관계가 더 탄탄해지게 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박혀 있는 정신 질환자의 이미지는 통제가 안 되는 순간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들의 일부분일 뿐이며, 이는 마치 장님이 코끼리 코만 만지고 코끼리의 모습을 뱀의 모양으로 단정 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최근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범죄자가 사실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을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과연 그들 중 실제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정신질환자에 대한 감형 제도가 없어진다면 아마도 그들은 더 이상 스스로를 ‘가짜’ 정신질환자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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