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이란 존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보다는 동물, 특히 애완동물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예전에 강아지를 키웠던 적이 있는데, 그 때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하고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적어도 동물은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철저하게 경계선을 만든다. 다만 내가 만든 경계선은 ‘친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경계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랜 시간 나를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말을 한다.
“도대체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네.”
당연한 말이다. 난 그들에게 한 번도 속내를 드러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경계선을 만드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부모님이나 동생들처럼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 있는 존재에게는 경계선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내가 경계선을 만들지 않은 유일한 존재는 지금의 아내뿐이었는데, 나의 자녀들이 두 번째로 경계선이 없는 존재가 될 것 같다.
아무튼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예외적 존재가 바로 내가 일했던 병원의 정신질환자들이었다. 그들의 순수함과 솔직함은 경계선을 느슨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그들과의 관계를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친구’라고 말하고 싶다. 그 단어 말고는 그들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만한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은 친구인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을 잊지 않고 챙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했고,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들도 알려주어야 했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는 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반대로 그들은 내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앨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을 알려주었다.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서투른 나에게 더 나은 방법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무엇보다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의 약점을 알게 하고 그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다. 우리는 서로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친구였다.
어느 순간부터,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하나 둘 떠나갔다. 사실 정신병원을 비롯해 사회복지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직원에 대한 처우는 매우 좋지 않은데, 사회적으로 하위권에 속할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아직도 사회복지는 단순히 자원봉사 혹은 누군가를 돕는 일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자원봉사를 하면서 월급까지 받느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복지 역시 수많은 직업 가운데 하나이고, 제공한 노동력만큼의 임금을 받는 것 또한 당연하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장기근속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나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 역시 그렇게 일터를 떠났다. 나도 항상 고민하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결국 더 나은 환경을 찾기 위해 병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0] : 공유할 일상생활 > 1. 게으른 청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pisode.18> 게으름뱅이, 미래에 대해 고민하다. (0) | 2024.05.22 |
---|---|
<Episode.17> 게으름뱅이, 사무실에 틀어 박혀서 지내다. (0) | 2024.05.22 |
<Episode.15> 게으름뱅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다. (0) | 2024.05.22 |
<Episode.14> 게으름뱅이, 정신병원에서 일할 수 있을까? (0) | 2024.05.22 |
<Episode.13> 게으름뱅이, 다시 공무원을 준비하다. (0) | 2024.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