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다시 본가에서 살게 되었고, 근처의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감사했다. 결혼 자금으로 모아놓은 돈이 있긴 했지만, 공부를 시작할 때 이 돈 만큼은 절대 손대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심했었다. 쉽지 않은 결정을 지지해준 여자 친구(현재의 아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의지를 반영한 결정이었다. 다행히 공부를 하는 동안 학비와 생활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고, 경제적인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되면서 공부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나고 무사히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게 되었고, 자격증이 나오자마자 본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사회복지사로서 처음으로 갖게 된 직장이었기에 상당히 의욕적이었다. 그렇게 수습기간 3개월이 지나고 드디어 정식으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곧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정규직이 된 후 처음으로 받은 월급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었다. 회사에서 일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사실 사회복지사의 월급이 적다는 건 이미 알고 있어서 각오한 부분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받은 금액은 근로계약서를 쓸 때 협의되었던 금액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너무 화가 났지만 감정을 가라앉히고 급여 담당자에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담당자는 월급이 어떻게 계산되었는지 자세히 알려주었는데, 그 계산대로라면 전혀 틀린 금액이 아니었다. 다만, 애초에 계산을 위해 산정된 금액이 내 생각과는 달랐기 때문에 당시 근로계약서를 썼던 책임자에게 가서 설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구두로 말한 건 의미가 없고 문서화 된 계약서에 이미 도장을 찍었기 때문에 번복할 수 없다고 했다. 내 생각과 전혀 다른 말을 하는 책임자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재차 물었지만, 상황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너무 화가 나서 내일부터 나오지 않겠다고 했지만, 마음대로 하라는 냉랭한 반응만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시간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운전 중이던 나는, 갑자기 유턴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상사에게 문자를 보내 더 이상 출근하지 않겠다고 연락했다. 갑자기 사직 통보를 받은 상사는 일주일 동안 연락을 하고 집에도 찾아왔지만, 나는 한 번도 만나거나 답변을 주지 않았다. 사회복지사로서의 첫 직장과는 그렇게 인연이 끝나고 말았다.
“사회생활을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그만두더라도 이유를 밝히고 떳떳하게 책임을 다해야죠.”
상사가 나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 내용이다. 당시엔 부조리한 처사에 너무 화가 나서 감정적으로 행동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너무나 어린 아이 같은 대처였다. 상사의 말처럼 직접 대화를 나누고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혀야 했고, 내가 맡았던 일을 마무리했어야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 사건은 나에게 가장 후회되는 일 가운데 하나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평생 후회로 남을 것 같다. 그 때로부터 시간이 얼마 정도 흐른 후, 병원에 찾아가서 사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결국 한 번도 찾아가지 못했다. 새삼스럽게 나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겁이 많은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그 때의 일은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서의 나 자신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말이 닿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저의 행동으로 피해를 보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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