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마무리된 것은 대한민국 남자라면 가야 할 군대에서 나를 찾았기 때문이다. 면제를 받으면 좋겠다는 바람과는 달리 전혀 면제 사유가 없었던 나는, 국가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입대하게 되었다. 그 때의 나에게 군대는 도둑놈이었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청춘을 2년이나 빼앗아 가는 극악무도한 도둑놈 말이다. 보통 20대 초반에 군대를 가게 되는데, 그 시기야 말로 자신감과 열정만으로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한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주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지닌 것이 바로 20대 초반의 청년이다. 다소의 무모함도 이해받을 수 있는 그 시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 대한민국의 불쌍한 남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에서도 배운 것은 있다. 극악의 환경인 군대에서도 배울 점이 있었다는 건 바꿔 말하면 앞으로 내가 어디에 가든 배울 점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군대에서의 2년은 어디에 가더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오기를 심어 준 곳이라 할 수 있다. 군대에서 배운 것, 달리 말하면 군대에서 알게 된 것은 사람이라는 존재의 악한 본성이었다. 불합리한 것들이 가득한 곳, ‘갑질’이 만연하는 곳, 권력의 무서움을 알게 해준 곳이 바로 군대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본 것은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있는 군인들이었다. 간부들, 선임들, 후임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악독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훨씬 많지만, 그 안에서는 나쁜 사람이 떵떵거리며 훨씬 편하게 살고 있었다. 마치 우리 사회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나는 두 명의 남동생이 있고, 그 아이들 모두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예비역들이다. 바로 첫째 동생이 군대에 가던 날, 어머니와 함께 동생을 배웅하러 갔었다. 훈련소 안으로 동생을 보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리 모자는 그저 바깥의 풍경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 밤, 군대라는 낯선 공간에 있을 동생을 생각하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막내 동생 역시 그렇게 군대에 보냈다. 동생들이 군대에 있는 그 시기동안 하루하루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살았는지 모른다. 내가 그런 마음으로 지냈는데, 아들 셋을 군대에 보낸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은 오죽 하셨을까.
“아빠가 힘이 있었으면 너희도 저~기 윗대가리들 자녀들처럼 군대 안가고 편했을 텐데.”
어느 날 아버지와 술잔을 기울이던 중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술기운에 괜히 하신 말씀이겠지만, 그 말 속에는 쓸쓸함과 무기력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우리 삼 형제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많은 청년 남성들이 그렇게 세상의 부조리를 한탄하며 군대에 간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국가가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군인에 대한 예우도 없고, 젊은 시절을 희생한 것에 대한 보상도 없다. 물론 어떤 보상을 딱히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군대를 위해 자신의 삶의 조각을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시선만큼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 입대가 나에게 알려준 사실이 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과 국가는 생각보다 우리들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은 무관심의 대상인 우리가 서로 의지하고 돕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면 아예 혼자서 헤쳐 나가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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